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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의 감시 속에서

« 자신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주고 있는 흑색 빛 주목 아래에
부엉이들이 정렬한 상태로 앉아 있다.
그들의 붉은 눈을 따갑게 쏘아보고 있는 이상한 신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명상에 잠겨 있다. »
샤를르 보들레르, 부엉이, 악의 꽃, 시 LXVII

이미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이 입증된 한나영은 지난 20여 년 동안 회화와 조각 두 분야에서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해왔다. 오늘날 작가로서의 성숙 미가 한층 더 무르익은 한나영은 자신의 두 가지 꿈을 동시에 실현시킬 수 있는 미적인 테크닉을 개발하였다. 다시 말해서, 물감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그림을 그리는 것, 그리고 어린 시절에 꿈꾸던 세상을 영원한 세계의 상징적이고 우주적인 차원 안에 담아 내는 것이다.
사실, 그 어느 누구도 철 알갱이, 세라믹 알갱이의 미세한 조각들을 사용하여 회화 작품을 그려내는 것에 대해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나영은 이와 같은 새로운 발견을 이루어냄으로써, 그녀 스스로 어린 시절과 즉각적으로 연관을 지었던 영역, 즉 색채와 데생의 환상적인 세계 안에 자유롭게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내맡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 우리의 시선은 완벽하게 사로잡히게 된다. 예컨대, 철 알갱이, 세라믹 알갱이 조각들은 작품의 표면 위를 덮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측면에도 일관성 있게 드러나 보이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작품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것 같은 인상이 들게 해준다.
이와 같은 기적은 한나영의 매우 단순화된 데생이 작품의 바탕 위에 조직적으로 연결되어 이어짐으로써 실현 가능해졌다. 그녀가 그린 데생의 선은 그 자체가 철 알갱이, 세라믹 알갱이 조각들 사이에 들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거기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마치 바닥에서부터 튀어나와서 우리를 만나러 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채색을 하고 유약을 입힌 이 미세한 철 알갱이, 세라믹 알갱이 조각들은 작가 한나영에게 매우 독특한 색계를 제공해준다. 특히,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황금색 혹은 진 회색의 다양한 톤의 색채는 흔히 흰색이나 검정색의 선으로 그려진 형상, 붉은 색과 파란색으로 표현된 태양, 나무 꽃, 혹은 수탉 꼬리를 보다 강렬하게 드러나게 해줌으로써 관객의 눈을 매료시킨다.
그리고 이 색채들은 각기 그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강력한 표현력 때문에, 작가가 그린 형체, 나무, 특히 동물이 살아 숨쉬는 상징이 되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한나영의 작품 세계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중요한 원칙을 이룬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에서 동물은 인간의 다른 한 면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가장 거리가 먼 존재인 동시에, 인간과 가장 유사하게 닮은 존재이다. 동물은 거울,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열정을 비춰주는 진정한 거울이며, 또한 어린 시절에 품었던 세상을 메아리 치는 반향이다.
예를 들면, 수탉은 지상을 나타내는 한 방식인 가느다란 선 위에, 혹은 아침에 떠오른 해를 의미하는 붉은 색의 원형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하늘 한 가운데 있는 아이콘들처럼, 알갱이들로 만들어진 땅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형상들을 따로 떼어내어 독립적으로 다루는 능력을 지닌 한나영은 작품 속에서 동물들이 각기 마치 인간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동시에,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과 매우 은밀한 공범자가 되게 함으로써, 동물들이 각기 일종의 상징이 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한나영의 작품은 모두 우리에게 동물과의 면대면 만남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대작의 경우에는 동일한 작품 위에 여러 마리의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이 때 각각의 동물들은 하나의 네모상자 안에 자리잡고 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면서도 그들 각자에게는 고유한 세계인 것처럼. 또한, 인생이라고 하는 이 거대한 쌍륙 안으로 우리 인간을 끌어들이기라고 하고 싶은 것처럼.
이미 고대 로마의 가옥에서, 특히 정물화라고 일컫는 작품들이나 피카소의 작품들 안에 드러나 있는 회화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동물은 한편으로는 인간들에게 그들의 편협함과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그들을 조롱하는 존재로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바로 여기에 작가의 힘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즉, 순진함을 나타내 보여주고, 동시에 완벽하게 계산된 도구들을 사용하여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능을 지니고 있는 작가 한나영은 그녀 스스로는 세상의 그 어떤 빛으로도 완벽하게 지워버릴 수 없는 일종의 슬픔의 후광 속에 잠겨 있는 채, 우리에게는 삶의 경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신들도 동물들에 대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작가 한나영이 나아가는 이 여정을 우리 함께 따라가보자. 그리고 우리 인간은 동물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그녀를 믿음을 갖고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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